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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쓴 초안을 내 공부로 만드는 과정
키워드와 질문에서 시작해 AI 초안을 검증하고 기존 글을 반복해서 수정하는 학습 방식
최근 선형회귀 글을 여러 번 고쳤다. 강의를 들으며 적은 키워드와 질문뿐 아니라 강의 노트의 핵심 내용도 AI에게 넘겼다. 노트에 있는 설명을 그대로 정리하기도 했고, 내가 이해한 내용을 따로 적어서 초안의 재료로 쓰기도 했는데, 다항 회귀 부분을 읽어도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다중 선형회귀와 다항 회귀는 무엇이 다른지, 는 왜 2차항인지, 모델이 집값의 증가량을 학습하는 것인지 계속 질문했다. 설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예시를 다시 만들고 문장을 바꿨으며, 마지막에는 처음보다 글이 꽤 길어졌지만 그제야 개념이 정리됐다.
그러다 의문이 생겼다. 이렇게 AI가 만든 초안을 고치는 것도 공부일까, 아니면 그럴듯한 글을 읽고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것일까.
백지에서 쓰는 것과 AI 초안을 읽는 것은 다르다
강의를 들은 뒤 백지에서 직접 쓰면 기억 속에서 내용을 꺼내야 한다. 어떤 개념을 먼저 설명할지 정하고, 서로 떨어진 내용을 연결하며, 이해한 내용을 내 문장으로 바꾸는 과정도 전부 직접 거친다.
인지심리학에서는 답을 읽는 것보다 직접 만들어낼 때 기억이 더 잘 남는 현상을 생성 효과(generation effect)라고 한다. 기억 속 내용을 애써 꺼내보는 인출 연습(retrieval practice)도 비슷하다. 머릿속에서 답을 찾는 동안 관련 기억의 연결을 다시 사용하기 때문에, 다음에 같은 내용을 꺼내기 쉬워진다. 직접 쓰기가 힘든 이유와 학습에 도움이 되는 이유가 같은 셈이다.
반대로 강의 자료를 통째로 AI에 주고 완성된 글을 읽기만 하면, 이미 정리된 논리를 따라가는 데서 끝날 수 있다. 매끄러운 설명을 읽을 때 내용까지 잘 안다고 느끼는 현상은 처리 유창성(processing fluency)과 관련이 있다. 읽기 쉽다는 느낌을 실제 이해와 혼동하는 것이다. 글을 읽을 때는 익숙했는데 화면을 닫으면 같은 내용을 다시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AI 초안을 사용하면 학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차이는 AI가 글을 썼는지보다 내가 초안 앞뒤에서 어떤 사고를 했는지에 있다.
| 방식 | 내가 하는 일 | 놓치기 쉬운 부분 |
|---|---|---|
| 직접 쓰기 | 인출, 구성, 설명, 문장 작성 | 시간이 오래 걸리고 표현 작업에 지치기 쉬움 |
| AI 결과 읽기 | 완성된 설명 확인 | 익숙하게 읽히는 것과 실제 이해를 혼동하기 쉬움 |
| AI와 함께 수정하기 | 질문 선정, 구조 검증, 오류 수정, 재작성 | 초안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수동적인 읽기로 바뀜 |
지금 하고 있는 방식에서 공부가 일어나는 지점
나는 강의 원문만 그대로 넘기고 글을 받아오지는 않는다. 강의를 들으며 핵심 내용을 추리고, 이해되지 않는 지점에는 질문을 남기며, 내가 이해한 방식도 함께 적는다. 이 단계에서 이미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구분하게 된다.
AI는 그 재료를 글의 형태로 정리하고, 나는 초안을 읽으며 논리가 끊긴 곳을 찾는다. 설명을 읽고도 이해되지 않으면 질문을 다시 던지고, 예시가 맞지 않으면 다른 예시로 바꾸며, 내가 사용하지 않는 표현도 걷어내는 과정을 이번 다항 회귀 글에서도 여러 번 거쳤다.
키워드와 질문 정리 → AI가 초안 구성 → 이해되지 않는 부분 찾기 → 다시 질문하고 검증 → 내 문장으로 수정 → 커밋
이 과정에서 AI가 대신하는 일은 문장 연결, 초안 구성, 형식 정리다. 반면 나는 무엇이 핵심인지 고르고, 어떤 설명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판단하며, 기술적으로 맞는지 확인한 뒤 최종 문장을 승인한다.
백지에서 전부 쓰는 것과 학습 방식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 AI가 구조와 문장을 먼저 제시하므로 순수한 인출의 양은 줄어들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서 더 많은 질문을 확인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 둘 중 하나만 선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헷갈리는 개념은 AI에게 넘기기 전에 내가 이해한 내용을 서너 문장이라도 먼저 써보고, 글을 마친 뒤에는 화면을 보지 않고 다시 설명해 보면 된다. AI가 줄여준 표현 작업의 일부를 인출 연습으로 돌려놓는 방식이다.
기존 글을 다시 고치는 것도 복습이 될까
한 번 잘 쓴 글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린다. 이후 강의에서 같은 개념을 다시 만나 기존 글을 열고 내용을 추가하면, 예전에 이해했던 내용과 새로 배운 내용을 비교하게 된다.
다만 시간이 지난 뒤 글을 다시 열었다는 사실만으로 간격 반복(spaced repetition)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간격 반복은 시간을 두고 같은 내용을 다시 꺼내보는 학습 방법이다. 기존 문장을 읽고 표현만 다듬으면 익숙한 내용을 다시 읽는 데서 끝날 수 있으므로, 글을 열기 전에 기억나는 내용을 먼저 떠올리고 이전 설명과 비교한 뒤 잘못된 부분이나 부족한 연결을 수정해야 복습의 효과가 커진다.
최근의 작업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다항 회귀의 정의만 추가했지만, 다시 읽으면서 다중 선형회귀와의 차이를 물었고, 교차항의 차수와 상호작용을 확인한 뒤 아파트 가격 예시까지 넣었다. 글을 여러 번 수정한 기록은 문장 변경 이력인 동시에 내 이해가 어디에서 바뀌었는지 남긴 기록이 됐다.
당시에는 매일 수업과 과제가 이어졌고 블로그까지 써야 해서 일정이 빡빡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처음부터 완벽한 글 하나를 만들기보다, 현재 이해한 만큼 먼저 쓰고 나중에 다시 고치는 방식이 나에게는 더 현실적이었다. 매번 새 글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 지식과 새 지식을 연결할 기회도 늘어난다.
앞으로 지키려는 두 가지 기준
AI를 사용했는지가 학습 여부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질문과 핵심 논리를 AI에 넘겨버리고 결과만 읽으면 학습 효과가 작아지고, 내가 먼저 질문을 만들고 초안을 검증하며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끝까지 수정하면 AI도 학습 도구가 된다.
내가 유지하려는 기준은 두 가지다. 초안을 받기 전에 내가 아는 것을 먼저 꺼내고, 기존 글을 고치기 전에 기억나는 것을 먼저 확인한다. AI는 글을 빠르게 구조화하고, 나는 질문과 이해에 대한 책임을 계속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