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감사가 몸에 닿는 순간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가 생각을 지나 몸의 감각으로 번져가던 경험
힘든 상황에서 가끔 속으로 말해본다.
감사합니다.
처음부터 거창한 마음이 올라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처음에는 문장에 가깝다. 머리로 알고 있는 말, 좋은 태도라고 배운 말, 이 상황에서도 내가 붙잡아보려고 하는 어떤 방향 같은 것.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아주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려고 하면 몸 안쪽에서 미세한 변화가 생길 때가 있다. 처음에는 가슴 근처 어딘가에서 몽글몽글 피어나는 느낌으로 시작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감각이 온몸으로 확장되고, 기분 자체가 짧은 시간 안에 달라진다.
가끔은 실제로 소름이 돋는다.
처음에는 이게 조금 찜찜했다.
힘든 상황에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게 혹시 억지 긍정은 아닐까.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하는 건 아닐까. 문제를 똑바로 보지 않고, 그 위에 예쁜 말을 덮는 방식이라면 별로 건강한 태도는 아닐 것 같았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아니라, 현실을 제대로 보고 싶다. 힘든 건 힘들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부당한 건 부당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이 무너졌는데도 감사해야 한다는 말로 자신을 눌러버리는 건 감사라기보다 자기감각을 무시하는 일에 가깝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감사는 그런 것과는 조금 달랐다.
힘든 감각이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현실이 갑자기 아름답게 포장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힘든 건 그대로 있는데, 그 아래나 옆에 다른 층위가 열리는 느낌에 가까웠다. 지금 이 일이 어렵다는 사실과, 그래도 내 안에서 감사가 올라올 수 있다는 사실이 동시에 존재했다.
그 둘은 서로를 지우지 않았다.
감사가 깊어질 때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머리로 “감사해야지”라고 반복할 때는 별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건 약간 할 일을 체크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말이 머리에서 내려와 몸 안쪽에 닿으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호흡이 조금 바뀌고, 가슴이 느슨해지고, 피부가 찌릿해질 때가 있다.
그때의 감사는 예의 바른 말이 아니다. 몸 전체가 어떤 사실을 기억해내는 일에 가깝다.
내가 완전히 혼자 살아온 게 아니라는 사실. 지금 당장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내 삶에는 이미 받은 것이 많다는 사실. 누군가의 도움, 어떤 우연,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보호 같은 것들.
이런 감각이 올라오면 신기하게도 시야가 조금 넓어진다. 문제는 여전히 앞에 있지만, 내가 문제만으로 이루어진 사람은 아니라는 게 느껴진다. 상황은 그대로인데, 상황을 담는 그릇이 조금 커진다.
나는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감사는 현실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현실보다 더 깊은 곳과 연결되는 방식일 수 있다.
앤드류 후버만의 감사 관련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흥미로웠던 것도 이 부분이었다. 그는 감사가 막연한 좋은 생각이 아니라, 뇌와 신경계에 실제 영향을 줄 수 있는 연습이라고 설명한다.[1]
후버만의 설명에서 감사는 친사회적 회로(prosocial circuits)를 켜는 쪽에 가깝다. 반대로 불안, 경계, 회피는 방어 회로(defensive circuits)에 가깝다. 감사가 잘 작동하면 친사회적 회로가 우세해지고, 몸은 위협을 향해 굳어 있는 상태에서 조금 빠져나온다.
여기서 자주 등장하는 영역이 내측 전전두엽(medial prefrontal cortex)과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 ACC)이다. 내측 전전두엽은 경험에 맥락을 붙인다. 같은 어려움이라도 “강제로 당하는 일”로 느낄 때와 “내가 의미를 두고 통과하는 일”로 느낄 때 몸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신경전달물질 쪽에서는 세로토닌성 경로(serotonergic pathway)가 중요하게 언급된다. 세로토닌은 뇌간의 솔기핵(raphe nucleus) 등에서 시작되는 신경조절물질인데, 후버만은 이를 이미 가진 것, 현재의 충만감, 연결감과 더 가까운 물질로 설명한다. 도파민, 에피네프린, 노르에피네프린이 바깥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외부지향 상태(exteroception)와 더 가깝다면, 세로토닌은 지금 여기에 머물며 이미 있는 것을 느끼는 쪽에 더 가깝다.
그래서 감사는 “더 얻어야 한다”는 추구 모드에서 “이미 받은 것이 있다”는 감각으로 신경계의 초점을 옮기는 연습처럼 느껴진다. 내가 몸으로 경험한 변화도 이 설명과 맞닿아 있었다. 감사가 깊어지면 문제를 해결한 것도 아닌데, 몸이 먼저 덜 움츠러든다.
후버만은 감사 명상이 뇌와 심장의 연결(brain-heart coupling), 심박과 호흡 같은 자율신경계(autonomic nervous system) 변수와도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감사 연습 뒤 편도체(amygdala) 활성 감소와 염증성 사이토카인인 TNF-alpha, IL-6 감소가 관찰된 연구도 언급한다.[1] 주관적으로 기분이 나아졌다는 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위협 반응과 염증 반응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후버만이 특히 강조한 건 방법이었다. 단순히 감사 목록을 적는 것보다, 감사가 담긴 이야기(narrative)를 떠올리는 쪽이 더 강하다고 본다. 내가 감사를 받았던 장면, 혹은 누군가가 진심으로 감사를 주고받는 장면을 상상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타인의 마음 상태를 떠올리는 능력인 마음이론(theory of mind)도 관여한다.[2]
이 설명은 내 경험과 잘 맞았다.
나도 그냥 “감사한 것 세 가지”를 기계적으로 떠올릴 때보다, 실제로 감사함을 느꼈던 장면을 다시 상상할 때 감정이 더 잘 살아난다. 누군가가 나를 도와줬던 순간, 생각지도 못한 배려를 받았던 순간,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나서야 그것도 나를 키운 시간이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그런 장면은 단어보다 몸에 가깝다.
감사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떠올릴 때보다 장면으로 떠올릴 때 더 잘 움직인다. 그 장면 안에는 표정이 있고, 온도가 있고, 내가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과학은 경험을 대신하지 않는다. 대신 경험을 덜 외롭게 만들어준다.
황농문 교수의 몰입을 떠올려도 비슷한 결론으로 간다. 몰입은 공부나 연구에만 쓰는 기술이 아니라, 의식의 방향을 한곳에 오래 머물게 하는 방식이다. 공식 책 소개에서도 몰입은 두뇌 활용, 문제 해결, 가치관 변화와 연결되어 설명된다.[3]
흥미로운 건 이 몰입이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몰입의 관점에서 특히 오래 기억하는 부분도 여기에 가깝다. 특정 사람의 장점이나 그 사람에게 감사했던 순간에 의도적으로 머물면, 처음에는 흐릿했던 감각이 점점 커져 보이고 마음의 방향도 달라진다.
어떤 사람의 단점에 오래 머물면 단점이 커진다. 반대로 그 사람에게 고마웠던 순간, 그 사람이 가진 좋은 점, 내가 실제로 받았던 도움에 오래 머물면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마음은 자신이 오래 바라본 것을 현실의 중심으로 만든다.
후버만의 언어로 말하면 감사는 이야기와 마음이론을 통해 신경계 상태를 바꾸는 연습이고, 황농문 교수의 언어로 말하면 감사했던 장면에 의도적으로 몰입하는 일이다. 둘의 언어는 다르지만, 내 경험 안에서는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감사했던 장면을 다시 떠올리고, 그 안의 표정과 말투와 온도를 오래 바라보는 것. 그러면 감사는 생각에서 끝나지 않고 몸으로 내려온다.
노엘 C. 넬슨과 지닌 르마르 칼라바의 책, 감사하기의 힘에서도 비슷한 방향을 본다. 이 책은 감사를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다룬다.[4] 감사는 좋은 일이 생겼을 때만 반응하는 감정이 아니라, 이미 있는 가치를 알아보는 태도에 가깝다.
이 말이 처음에는 조금 평범하게 들릴 수 있다. 이미 있는 가치를 알아본다니, 좋은 말이지만 너무 익숙한 말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실제로 힘든 상황에 들어가면 이 말은 훨씬 어려워진다. 마음은 자연스럽게 부족한 것, 위협적인 것, 해결되지 않은 것에 붙잡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사는 자동반응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감사는 방향을 다시 잡는 일이다. 지금 내 의식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억지로 현실을 꾸미는 대신, 현실 안에 함께 존재하는 다른 사실들을 다시 감지해보는 일. 받은 것, 지나온 것, 아직 남아 있는 것, 그리고 내가 이 순간에도 완전히 닫혀 있지는 않다는 사실.
그런 의미에서 감사는 약간 훈련에 가깝다. 하지만 차갑고 기계적인 훈련은 아니다. 오히려 아주 부드럽게 몸을 설득하는 일에 가깝다.
요즘 내가 해보는 방식은 단순하다.
조용히 멈추고, 마음속으로 감사합니다, 라고 말한다. 하지만 말을 빨리 지나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 말이 머리에만 머물면 그냥 문장으로 끝난다. 그래서 조금 더 기다린다. 그 말이 가슴 근처까지 내려오는지, 몸 안쪽에서 아주 작은 온도라도 생기는지 느껴본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날도 있다. 그럴 때는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감사는 만들어내는 감정이라기보다 맞이하는 감정에 더 가까워서, 힘으로 쥐어짜면 금방 가짜처럼 변한다.
하지만 어떤 날은 작게 열린다. 처음에는 아주 희미한 감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감각이 천천히 커지다가, 어느 순간 몸 전체로 번진다. 그때는 생각이 바뀌었다기보다 내가 머무는 상태가 바뀐 것처럼 느껴진다.
힘든 상황이 사라진 건 아니다. 그런데 내가 그 상황 안에서 완전히 굳어 있지는 않게 된다.
나는 이 차이가 감사의 진짜 힘에 가깝다고 느낀다. 감사는 모든 일을 좋게 해석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오히려 힘든 일을 힘든 일로 남겨둔 채,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삶과의 연결을 다시 느껴보는 일이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몸에 닿을 때가 있다.
그 순간 나는 현실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현실보다 조금 더 넓은 곳으로 돌아온다.
참고문헌
- Andrew Huberman. The Science of Gratitude & How to Build a Gratitude Practice. Huberman Lab.
- Andrew Huberman. Essentials. The Science of Gratitude & How to Build a Gratitude Practice. Huberman Lab.
- 황농문. 몰입 확장판.
- Noelle C. Nelson, Jeannine Lemare Calaba. The Power of Appreciation.